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성 사건 (문단 편집) === 인질 납치 === 손미요는 포독고에서 포위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때 손미요의 숙부인 참모장 손계지가 철도를 습격해 외국인을 인질로 삼아 관병의 포위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다. 이에 손미요는 임성, 난징, 상하이에 밀정을 보내 5월 8일 미국의 지원으로 황하에 건설된 댐 준공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준공식에는 여러 인사들과 기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5월 5일 임성경무처장 장문통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경찰 간부들 역시 대거 참석할 것이라는 정보도 들어왔고 손미요는 5월 6일 새벽에 열차를 습격하기로 했다. 작전은 성공하여 중국인 71명, 외국인 39명이 토비들에게 붙잡혔는데 토비들은 관군이 쉽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분산수용했다. 토비들은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을 강탈했는데 그들이 처음 보는 물건이 많았던지라 모든 물건의 용도를 일일이 물어보았는데 웃긴 일도 있었다. 예컨대 로션의 경우에는 처음에 먹는 것으로 여겼으나 피부에 바르는 것이라는 걸 알게되자 모두 버렸으며 브래지어는 허리띠의 일종인줄 알고 차고 다니기도 했다. 손미요는 독일인 천주교 선교사에게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우리들은 예전에 군인이었으나 해산된 이후 생계가 막막하여 약탈로 연명하는 자들로서, 이번 일은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번에 외국인들을 납치한 것은 정부에게 우리들을 정규군으로 다시 편제시켜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돈을 탐하여 저지른 행동이 아니다." 당시 토비들 중에서는 [[2.7 사건]]에 참여했던 철도 노동자들이나 [[제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영국에 파견되어 일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는데 이들은 철도 공정에 익숙하여 손쉽게 열차를 정지시킬 수 있었으며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에 능통한 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러시아인을 아내로 거느린 자가 있어 외국인과의 소통이 가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